1960년대와 7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는 한 명의 빛나는 별을 품고 있었습니다. 바로 '영원한 오빠' 남진입니다. Mnet 레전드 아티스트 100에서 소개된 문구처럼, 그는 오빠부대의 원조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팬덤을 이끌었던 대한민국 가요사의 거목입니다.
자타공인 1970년대 한국 가요계의 아이콘이었던 남진은 라이벌 나훈아와 함께 그 시대를 양분하며 대중문화의 황금기를 장식했습니다.
1965년 데뷔 이후 가수 남진은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이자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남진은 원래 스탠다드 팝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 창법을 선호했으며, 굵직한 저음의 매력적인 보이스를 자랑합니다. 1990년대 두 번째 컴백 이후에는 나이로 인해 트로트 곡 위주로 활동했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의 전성기에는 트로트와 로커빌리 로큰롤을 넘나들며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깊은 애정은 그의 음악과 무대 퍼포먼스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엘비스를 벤치마킹한 그의 스타일은 당시 소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마음이 고와야지'와 같은 불멸의 히트곡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트로트는 끈적한 '뽕끼'보다는 중후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어,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매력을 선사합니다.
놀랍게도 현재는 가수로만 기억되는 경우가 많지만, 남진은 원래 영화배우를 꿈꿨던 연극영화과 출신의 꽃미남이었습니다. 전성기 시절에는 수십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스크린에서도 활약한 다재다능한 스타였습니다.
전라남도 목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남진은 어린 시절부터 연극과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화배우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한 그는 우연한 기회에 작곡가 한동훈을 만나 가수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데뷔곡 '서울 푸레이보이'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 발표한 '연애 0번지'가 금지곡 처분을 받으면서 또다시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절망 속에서 고향으로 돌아갔던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2집 수록곡이었던 트로트 '울려고 내가 왔나'로 재도전에 나섰고, 이 곡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남진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트로트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울려고 내가 왔나'의 성공 이후 발표한 '가슴 아프게' 역시 큰 인기를 얻으며 MBC 신인가수상을 수상했고, 영화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최고의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로커빌리 스타일의 '마음이 고와야지', '그대여 변치 마오', '님과 함께' 등의 연이은 히트곡들은 그의 독보적인 입지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1968년, 그는 해병대에 입대하여 월남전에도 참전하는 특별한 이력을 남겼습니다. 제대 후에는 '님과 함께'라는 메가 히트곡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며 국내 최초로 서울 시민회관에서 귀국 기념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컴백 이후에는 당대 최고의 신인이었던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가요계의 큰 이슈를 몰고 왔습니다. 하지만 1972년 '나훈아 피습 사건'에 휘말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후 방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피습 사건 며칠 전 괴한으로부터 나훈아를 해치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의 목포 집에는 방화 사건까지 일어나는 등 충격적인 사건들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가수 남진의 라이벌이었던 나훈아 사망설 및 별세 죽음 관련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이는 헤프닝으로 끝난 사고였습니다. 남진과 달리 나훈아 가수의 최근 영상 및 근황을 보면 이제는 은퇴를 결정한 것으로 아는데 팬의 한 사람으로서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가수 남진은 1976년에는 윤복희와 결혼하며 또 한 번 큰 화제를 모았지만, 1979년 이혼 후 1980년대 신군부의 탄압으로 인해 미국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집안이라는 이유로 방송 출연까지 금지되었던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활발한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2000년에 발표한 '둥지'는 그의 대표적인 컴백 히트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신비주의 콘셉트의 나훈아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과 공연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2009년에는 후배 가수 장윤정과 함께 듀엣곡 '당신이 좋아'를 발표하며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가수 남진 근황 중에는 2023년 배구 선수 김연경 선수, 김기현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인해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그는 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연예계 대표 '마당발'로서 지역과 직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해 왔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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